“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1949년에 나온 이 한 문장이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도발적이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틀리지 않았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철학자이자 작가였습니다. 실존주의를 젠더 문제로 확장한 사람입니다. 그녀 이전에 철학은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남성만 이야기했습니다. 보부아르는 그 침묵을 깼습니다.
보부아르는 어떤 사람이었나
시몬 드 보부아르는 파리 출신입니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1929년 교원자격시험에서 2위를 했는데, 1위가 장-폴 사르트르였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평생 지적 동반자였습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계약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선택 자체가 그녀의 철학과 일치했습니다.
한 가지 오해를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보부아르를 “사르트르의 그림자”로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완전히 틀렸습니다. 보부아르는 독자적인 철학자입니다. 오히려 사르트르의 일부 개념이 보부아르의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 실존주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1908-1986]](https://cash-flown.com/wp-content/uploads/2026/07/보부아르-초상화-216x300.jpg)
타자 — 여성은 왜 ‘제2’인가
보부아르의 출발점은 간단한 관찰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남성은 언제나 주체였습니다. 여성은 타자(the Other)였습니다.
타자란 무엇인가요. 철학에서 타자는 ‘나’가 아닌 존재입니다. 주체가 자신을 정의할 때 기준이 되는 대상입니다. 문제는 이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겁니다. 주체는 스스로를 본질로 정의하고, 타자를 부수적인 존재로 규정합니다.
보부아르는 이것이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됐다고 봤습니다. 남성은 인간의 기준입니다. 여성은 그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 ‘제2의 성(The Second Sex)’입니다. 남성이 주체라면 여성은 타자입니다.
이 구조가 문제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타자로 규정된 존재는 스스로를 타자로 내면화합니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열등하고, 의존적이고, 남성을 위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사회가 만든 틀을 본인의 본성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여성은 만들어진다” — 핵심 주장

1949년 출판된 『제2의 성』은 두 권짜리 방대한 저작입니다. 1권은 생물학, 정신분석학, 역사유물론이 여성을 어떻게 설명해왔는지 비판합니다. 2권은 여성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분석합니다.
핵심 명제는 유명합니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여성다움은 타고난 본성이 아닙니다. 사회가 만든 역할입니다. 순종적이고, 감성적이고, 가정적이어야 한다는 기대. 이것은 생물학이 결정한 게 아닙니다. 문화와 역사와 권력이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실존주의와 연결됩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명제를 기억하시나요?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 없이 태어납니다.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보부아르는 이 원리를 여성에게 적용했습니다. 여성성이라는 본질은 없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입니다.
자유와 상황 — 선택은 언제나 조건 안에 있다
보부아르는 단순히 “여성도 자유롭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너무 쉽습니다.
그녀의 통찰은 더 복잡합니다. 자유는 언제나 상황 안에서 행사됩니다. 아무 조건 없이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특정 시대, 특정 계층, 특정 몸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문제는 어떤 상황은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겁니다. 경제적 의존, 교육 기회의 박탈, 사회적 기대. 이런 구조 안에서 여성의 선택은 처음부터 좁습니다. “왜 더 자유롭게 살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그 구조를 무시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보부아르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말했습니다. 여성도 주체적 선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을 가로막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먼저입니다. 개인의 각성과 사회 구조의 변화, 둘 다 필요합니다.
앙가주망 — 철학자는 현실에 개입해야 한다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개관 포스팅에서 다룬 앙가주망(Engagement, 참여) 개념을 실천한 철학자입니다.
그녀는 글 쓰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알제리 독립운동을 지지했습니다. 낙태권 합법화 운동에 서명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철학이 삶과 분리된 관념 유희가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도구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점에서 보부아르는 한나 아렌트와 닮아 있습니다. 아렌트가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를 강조했다면, 보부아르는 억압받는 자들 편에서 직접 행동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방향은 달랐지만, 철학자도 세상에 개입해야 한다는 믿음은 같았습니다.
보부아르가 받은 비판과 그 의미
보부아르 철학은 모두의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1세대 페미니스트 일부에서는 보부아르가 ‘여성다움’ 자체를 부정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모성이나 여성적 가치를 남성 중심 가치 기준에서 열등하게 본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후기 페미니즘에서는 보부아르가 서구 중산층 백인 여성의 경험을 일반화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인종, 계층, 문화에 따라 여성의 경험은 전혀 다릅니다.
이 비판들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연 문을 무효화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을 생물학적 운명이 아닌 사회적 구성물로 본 최초의 체계적 철학. 그 출발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 철학자 | 여성/타자 문제 접근 | 핵심 주장 |
|---|---|---|
| 보부아르 | 실존주의+젠더 | 여성은 만들어진 타자, 구조를 바꿔야 한다 |
| 한나 아렌트 | 공적 영역 참여 | 복수성 속 행위가 자유를 실현한다 |
| 주디스 버틀러 | 수행성 이론 | 젠더는 반복 수행으로 만들어진다 |
| 벨 훅스 | 교차성 페미니즘 | 인종·계층·젠더를 함께 봐야 한다 |
지금 우리에게 보부아르가 필요한 이유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쓴 지 7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질문은 지금도 낯설지 않습니다.
- “이건 원래 여자/남자가 하는 일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 보부아르라면 물을 것입니다. 그 ‘원래’는 어디서 왔습니까? 자연에서 왔습니까, 역사에서 왔습니까?
- 스스로를 타자로 만들고 있을 때: 타인의 기대를 내 본성으로 착각하지 않는지 점검합니다. 보부아르는 이것을 ‘공모(complicity)’라고 불렀습니다.
- 사회 구조를 개인 문제로 볼 때: 개인이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 보부아르는 그 생각이 구조를 보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정리: 시몬 드 보부아르 철학 핵심 세 줄
첫째, 여성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타자입니다. “여성은 만들어진다”는 말은 그 구조를 드러냅니다. 둘째, 자유는 상황 안에서 행사됩니다. 선택을 가로막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먼저입니다. 셋째, 철학은 현실에 개입해야 합니다. 보부아르는 글과 행동으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보부아르는 철학을 인류 전체의 것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남성만의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의 것으로. 그 시도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포스팅 예고
다음에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를 다룰 예정입니다.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으로 철학계를 흔든 해체주의 철학자입니다. 언어와 의미, 이분법의 해체.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을 데리다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 사르트르 철학, 하버마스 철학, 시몬 드 보부아르 위키 백과
